죽암 전명운의사 제66주기 추모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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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690회 작성일 13-11-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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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명운의사기념사업회ㆍ대종회 주관

- 종원 및 광복회원 등 100여 명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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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운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전봉훈)는 지난 11월 18일 11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죽암 전명운 의사 제66주기 추모식’을 거행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유철 광복회 회장을 비롯한 광복회원들과 독립유공자유족회 윤재희 부회장, 남부보훈지청 신명철 지청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대종회에서는 경진 대종회장과 광로 명예회장, 병석 고문, 용학 전 국회의원, 병재 수석부회장 등 많은 임원들이 참석했다. 특히 부산, 창원을 비롯해 지방 종친회 임원 등 모두 100여 명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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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 의전관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와 윤재희 부회장의 전명운의사 약전보고, 박유철 광복회장과 경진 대종회장의 추모사로 진행됐다. 이어서 전명운 의사가 작사한 애국가를 군악병의 연주로 참석한 내ㆍ외빈이 재창했다.


유족 대표로 의식(전명운의사 嗣孫) 사무총장이 먼저 분향 ㆍ헌화하고 이어 외빈ㆍ 내빈 순으로 분향ㆍ헌화가 진행됐다.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전명운 의사에 대한 묵념을 끝으로 추모식을 모두 마치고 충혼당 휴게소에서 오찬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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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죽암 전명운 의사는 시조 담양군 25세손으로 18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 의사는 1908년 3월 23일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일하면서 일본의 주구 노릇을 하던 미국인 D.W.스티븐스가 일제의 한국침략 행위를 정당화하는 선전활동 차 상항(桑港)에 도착하자 페리정거장에서 육혈포로 저격하는 거사를 일으켰다. 현장에서 체포된 전 의사는 재판을 받았으나 이 사건이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켜 배심원들은 ‘愛國的幻想殺人(애국적환상살인)’으로 판결해 보석으로 석방됐다. 전 의사는 이후 러시아로 망명해 독립군해외기지 건설에 참여하는 등 안중근의사 의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국 상항에 귀환한 전 의사는 항일단체인 국민회ㆍ동지회 회원으로 애국강연을 하면서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는 한편 LA거주 한인들로 결성된 준군사단체인 맹호부대원으로 활동하는 등 한평생을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전 의사는 광복 후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귀국을 미뤄오다 결국 1947년 11월 18일 뇌졸중으로 별세했다. 전 의사는 정부로부터 1962년 건국훈장을 추서 받았으며, 1994년 LA천주교 묘역에서 유해가 봉안돼 이곳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글ㆍ사진 ㅣ 전병열 종보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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