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世代 원로종친 남사(南沙) 봉훈(奉勳)고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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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941회 작성일 13-11-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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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진(慶鎭)대종회장 영결식에 참석해 애도사(哀悼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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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사 영결식 장면

대종회 창립부회장으로 최근까지 종사 활동을 해온 대종회 남사 봉훈 고문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백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남사 고문은 지난 4월 대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 후 대종회 정기총회 등에 참석하는 등 회복세를 보였으나 지난 10월초 장출혈을 일으켜 병병원에 재입원 집중 치료를 받아 왔다.

자택 근체인 강동 경희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대종회 경진 회장과 광로 명예회장, 병재, 병준 부회장, 용원 대한석유협회장 등 다수의 在京 종친들이 문상하고는 고인이 종사에 바친 열정을 회고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장남과 차남의 입국을 기다리느라 4일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서는 경진 회장이 분향과 술잔을 올리면서 장문의 애도사(제환 부회장 대독)를 영전에 바치며 마지막 작별을 했다.

강남 장지동 추모공원에서 화장 절차를 마친 남사 고문의 유해는 향리인 경남 의령으로 옮겨져 의령, 부산, 마산, 대구에서 찾아온 10여명 종친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은 후 고인이 손수 마련해 두었던 유택에 안정되었다.


남사 대종회 고문은 우리 潭陽田門의 4대 집성촌 중의 하나인 宜寧에서 출생해 함안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의령과 함안군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경남도청의 인사계장으로 활동하다가 서울로 진출하여 연합신문 동양통신의 이사 겸 비서실장으로 言論界에 종사하였고 야당인 민정당, 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제3대, 제4대,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남사 고문은 1982년 담양전씨대종회 창립부회장을 맡아 종친운동에 投身한 후 耕隱 先祖 추모사업회를 결성하여 의령소재 태암서원 復元事業에 진력하였고 1994년부터는 대종회 상임고문으로 潭陽齋室 부지 확보와  宗門의 탄탄한 기반 구축에 功을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남사고문은 말년엔 애국지사, 田明雲義士를 宣揚하는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애국지사 선양사업에 투신해 대내외에 널리 이름이 알려져 왔다.        




哀 悼 辭

오늘, 우리 담양전씨대종회의 1세대 元老이시자 門中의 발전을 위해 솔선수범 獻身해 오신 南沙 奉勳 고문님을 永訣하는 이 엄숙한 자리에서, 저 대종회장 慶鎭은 20萬 宗親들과 함께 고문님의 서거를 슬퍼하며 삼가 靈前에 머리 숙여 冥福을 비나이다.


嗚呼! 남사 고문님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는 말입니까? 인생길은 草露라고 하지만 어허 참, 하느님도 무심하십니다.

얼마 전 입원 중이신 病床을 찾아뵈었을 때 제 손을 굳게 잡으시고 여러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幽明을 달리 하시다니 너무나 비통할 따름입니다.    

오늘 이 자리엔 그동안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始祖이신 潭陽君 할아버지의 한 뿌리 宗親들이 애통하고 침통한 마음으로 고문님과의 마지막 작별의 순간을 배웅하고자 모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고문님은 평소 宗門을 위한 것이라면 크고 작은일 가리지 않고 항상 先頭에 서 계셨습니다. 고문님의 추진력은 熱火와 같은 情熱의 상징이었습니다. 중단 없는 疾走 本能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후배 宗親들이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면 인자한 손길과 미소를 던질 줄 아는 지도자의 카리스마도 갖춘 元老이셨습니다.


남사께서는 우리 潭陽田門의 4대 집성촌 중의 으뜸인 宜寧人으로 태어나 함안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의령과 함안군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경남도청의 인사계장으로 활동하면서 건국대학에 입학, 晝耕夜讀으로 法學士가 되셨습니다.


首都 서울로 진출하여 연합신문 동양통신의 이사 겸 비서실장으로 言論界에 종사하시던 고문님께서는 자유당의 거물정치인 양우정 의원의 비서실장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민정당과 민중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제3대, 제4대,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연이은 불운으로 낙선하자 과감하게 정당생활을 淸算하고 政界에서 은퇴하셨습니다.


그 후 진성상운, 담양물산 등의 기업을 경영하시다가 학교법인 영파학원의 관선관리자로 교육사업에도 헌신하셨고 1982년엔 담양전씨대종회 창립부회장을 맡아 종친운동에 投身하셨습니다.


또한 耕隱 先生 추모사업회를 결성하여 의령소재 태암서원 復元事業에 진력하였고 1994년부터는 대종회 상임고문으로 종사 중흥에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潭陽齋室 부지 확보에도 힘써 우리 宗門의 융성과 탄탄한 기반 구축에 功을 세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藝術에도 造詣가 깊어 隨筆家로 활동하면서 팔순기념 ‘南沙文集’을 刊行하여 세종문화회관 강당에서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개최했고, 한국서화가협회 초대작가로 많은 서예작품을 남기셨습니다.


특히 고문님은 우리 門中이 배출한 애국지사, 田明雲義士를 宣揚하는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미국 로스앤젤리스에서 의사님의 유해를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봉환하는데 앞장 서셨고, 한해도 거르지 않고 추모행사를 거행하여 애국운동의 龜鑑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갑작스러운 悲報라니 人生의 무상함과 안타까움을 어찌 筆舌로 표현하겠습니까?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원로님이 계셔서 든든했습니다. 남사고문님이 그토록 愛着을 가져주신 우리 대종회는 담양성역에 훌륭한 재실을 건립하였고 지금은 인터넷 족보를 겸한 새 족보를 간행하는 사업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는 이때에,  結實을 못보고 가셨기에 여기에 남은 저희들은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문님이 뿌려주신 宗事의 씨앗은 약진하는 宗勢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서 반드시 알차고 값진 열매를 맺을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고문님을 마지막 보는 이 자리에서 저희들은 슬픔과 아픔을 삼키며, 종사발전을 위한 헌신과 봉사를 다할 것이오니,


훌훌 털어버리시고 天國에서 悠悠自適 편안하게 보내소서.

마지막 告別人事를 올립니다.
남사 고문님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부디 永生을 누리소서.


2013년 11월 27일

 

                                           潭陽田氏大宗會 會長 田慶鎭 사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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