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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형보윤린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25-08-0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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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에 갇힐라’ 다닌 제빵학원서 ‘운명적 착상’
라일락꽃 핀 보름 동안 500매 쓰고 마친 ‘20대’



내년 등단 30돌을 맞는 조경란(56) 작가. 1996년 단편 ‘불란서 안경원’으로 신춘문예 등단한 뒤 ‘제1회 문학동네 작가상’에 공모해 뽑힌 장편 ‘식빵 굽는 시간’이 그의 첫 단행본이다. 당시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공동 수상했다. ©한정구, 작가 제공


지난해 이맘때는 하양에 있었다. 여름휴가를 보내러 갔는데 한여름의 대구를 경험하기는 처음이었다. 친구실시간다우지수
의 빈 아파트 거실에는 에어컨이 없고 천장 구석에 선풍기만 하나 달려 있었다. 뭔가 좀 자신 없어 하며 거실 테이블에 교정지 봉투를 올려둔 채 계속 에둘러 다녔다. 봉투에는 한 출판사의 ‘한국문학전집’으로 재출간 예정인 ‘식빵 굽는 시간’ 재교지가 들어 있었다. 진짜 문제는 습도와 더위가 아니라, 나는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가만가만히 ‘첫 책’을 피해 온라인황금성
다닌 셈이다. 이십대에 쓴 책을 오십대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일은, 매달렸으나 실패하고 만 첫사랑을 분석하고 들여다보는 일처럼 느껴진달까. 서툴고 미성숙해서 첫 장부터 새로 쓰고 싶은 소설. 그러나 이건 그저 지금의 마음일 뿐이고, 그때 1996년 5월1일에 “당신, 이제 당신에게 식빵 이야기를 하고 싶어”라는 첫 문장을 쓰던, 문학에 진심이고 매진하고 싶었증권대출
던 스물여덟의 내 일부를 오래 잊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며칠 후 선풍기를 탁 틀어놓고 테이블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이십대는 힘도 들었지만 인생에 변화가 가장 컸던 시기이기도 했다. 짧게 말하면 히키코모리에서 작가로 등단, 첫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으니까. 좀 길게 말하기 시작하면, 오년 동안 집에서 책만 읽다가 스물여섯살에 대학신천지인터넷게임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는데 그제야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덜컥 생겨버려 읽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졸업을 앞둔 해에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드디어 작가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발 디디게 되나 싶었는데 사방이 조용했다. 이렇게 지내다간 도로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말 것 같아 동네 제빵제과학원에 등록했다. 반죽을 매만지다가 어떤 생각이 스쳤다.바다이야기게임장
빵 굽는 여자, 가족, 정체성, 사랑. 그 당시 정기구독하던 신생 문예지에서 제1회 신인 작가상 모집 공모를 보았다. 염두에 뒀던 키워드들, 저절로 떠올라 한번도 바뀐 적이 없던 ‘식빵 굽는 시간’이라는 제목이 없었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모 마감이 5월 마지막 날이었다. 제빵사 시험을 앞둔 학원 사람들과 잠시 작별을 하고 나는 5월1일부터는 옥탑방에 들어앉아 소설을 썼다. 처음 시도하는 긴 분량이라 하루에 30매쯤은 쓰자, 라는 마음으로. 점심 먹고 쓰고 저녁 먹고 쓰고 새벽에도 썼다.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15일은 스승의 날이라 학교로 스승을 뵈러 갔다 왔다. 그리고 감기로 앓았던 날, 그렇게 이틀은 쓰지 못했다. 책상 옆에서 잠깐씩 쉬거나 잠을 잘 때 앞집의 오래된 나무에서 연한 보랏빛으로 핀 라일락 꽃향기가 창으로 흘러들어왔다. 미풍처럼, 미광처럼.
깨고 싶지 않은 고독 속에서 마지막 문장 “지금은 다시 식빵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었으므로” 쓰고 나서 고개를 드니 18일 새벽이었다. 이토록 무엇엔가 자발적으로 몰입하고 빠져드는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그해 팔월에 ‘식빵 굽는 시간’ 초판이 출간됐다. 책을 실물로 본 순간 내 삶의 한 조각을 손으로 떠안는 기분이 들었고 동시에 나의 이십대가 끝났다는, 이제 다른 장(章)이 시작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식빵 굽는 시간 l 문학동네(1996)


첫 책은 내 문학의 이러한 시작과 같았다. 부족함을 나날이 적립하며 덜 부족한 소설을 쓰고자 하는, 더 나은 소설을 쓰고자 하는. 그사이 29년이 흘렀다. 첫 책이 미성숙해 보이는 지금은 그럼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있나? 그렇지도 않을지 모른다. 다만 매일매일 읽고 쓰기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을 뿐.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언제 어디서나 라일락 향기를 맡으면 첫 책 쓰기에만 몰두해 있던 그해 오월로 홀연히 되돌아가게 된다. 내 인생의 먼지 쌓인 길을 쓸어 타인과 세계로 닿는 길을 내고 싶다는 간절함만으로 지낸 시간. 요즘처럼 게으르게 지내거나 쓰지 못하고 있을 때면 그날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보름 만에 500매짜리 소설을 쓰다니. 지금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그런 젊은 시절은 역시나 지나가버렸다.
조경란 작가
그리고 다음 책들
풍선을 샀어
2008년도에 출간한 소설집이다. 최근에 중쇄를 찍었다고 출판사에서 보낸 견본책과 영수증을 받았다. 8쇄, 200부. 이렇게 적은 부수로라도 내 소설집 중에선 ‘살아남는’ 책이 되어 기특한 마음이 든다. ‘풍선을 샀어’는 500매쯤 분량의 경장편으로 계획했다가 우선 짧은 분량으로 써보았던 단편이다. 중심인물이 독일에서 니체를 전공하다 돌아온 철학자 여성이라 ‘책세상’ 니체 전집을 광화문의 스타벅스 창가 자리를 전전하며 완독했다. 작업실을 갖기 이전에 쓴 소설이고 이때까지만 해도 내 소설에 유머와 농담이 있었던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2008)



복어
작가가 된 후로 평생 한번은 꼭 써야지 싶었던 이야기였다. 들추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 불편해하는 식구들이 있었고 오랫동안 미안했다. 더 나은 작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었다. 며칠 전에 뉴욕에서 출간되었고 인연이 없다고 여긴 영국에 처음 판권이 팔린 책이 되었다. 이 어두운 책을 쓰던 1년 동안 마음도 몸도 아팠다. ‘복어’ 이후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새 장편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게 마음의 큰 짐이기도 하다.
문학동네(2010)



가정 사정
나는 아무래도 단편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작지만 큰 세계를 담을 수도 있고 평범한 인물이 하는 일상의 비범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기도 하고 작은 질문으로 시작해 큰 질문을 남길 수도 있어서일까. ‘가정 사정’은 나의 여덟번째 소설집이다. 오래 청탁이 없어서 내가 나에게 청탁하고 마감일을 정해서 완성한 책. 여기 수록된 여덟편의 단편들을 쓰며 코로나 기간을 견디기도 했다. 지금은 아홉번째 소설집을 쓰는 중이다. 부족함이 덜한 소설집을 한권 쓰는 게 궁극의 꿈이다.
문학동네(2022)



일러두기
문학청년 시절에 어떤 책으로 소설 읽기를 시작해야 할지, 어떤 작가 작품을 읽어야 할지 잘 몰랐다. 자율학습 시간을 빼먹고 광화문 ‘공씨 책방’에서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들을 차례대로 읽었다. 작가가 되고 보니 존경하는 선배 소설가들이 대체로 이 상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상이었다가 오십 이후로는 단념하게 된. 지난봄 작가가 된 지 28년 만에 수상 연락을 받았다. 지난해가 이 상을 만든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마지막 자리였다. 이렇게 나의 문학적 한 시기가 또 지났다.
문학사상(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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