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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그는 일상으로 대답했다. 대로 성언에게 발린[김종성 기자]▲ 만년의 이승만 대통령.
ⓒ NARA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1954년 개헌을 디딤돌로 이승만은 사실상의 종신군주가 됐다. 그러자 야권은 1955년에 민주당이라는 거대 야당을 형성해 반이승만 전선을 강화했다. 그런데 이승만에 대한 도전의 진원지는 민주당뿐만이 아니페어퍼코리아 주식
었다. 그것은 외부에서도 왔다.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 등에서 전개된 1950년대 후반의 정치적 격동도 그의 권력에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전반기 세계질서의 구도 중 하나는 '식민지 대 제국주의'였다. 1939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이 문제를 제대로 그리고 올바로 해결하지 못했다. 한국과 중국도 부분적으로 참여네오엠텔 주식
하기는 했지만, 이 대전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이었다. 식민지배문제의 해결이 이 대전의 일차적 과제가 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두드러진 것이 미국과 소련 어느 쪽과도 동맹하지 않는 제3세계 비동맹진영이다. 이는 제2차 대전이 해결할 수 없었던 과제들을 식민지배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한 CJ CGV 주식
새로운 도전이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1950년대의 역사적 의의에 관한 기고문을 1960년 1월 초의 영국 <옵저버>에 실었다. 이 기고문에서 그가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블럭화다. 이 글을 번역한 그달 8일 자 <조선일보> 기사 '50년대의 역사적 의의 3'에 이런 대목이 있다.
"로시아가 미국보KODEX조선 주식
다 뒤떨어졌던 거리를 단축한 것이 지난 10년 동안에 일어난 유일한 변화가 아니었다. 정치적인 힘의 관계를 논한다면, 서방측이 아닌 인류의 대다수가 신흥세력으로써 서방 소수파와 동등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접근하게 되었거니와, 아·아 뿔럭 내에 있어서는 중공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인도·인도네시아 등과 예리한 대립을 일으키고 있다. 50년대라고주식시세표
해도 무방하겠지만, 정확히는 1947년 이래 12년 동안이라고 해야 할 지난한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적 변화는 서방 식민정치하에 있던 비서방제국민이 점차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토인비는 인류 대부분이 제3세계로 묶이고 있으며 서방세계와 동등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가 그렇게 평가한 제3세계는 이승만이 종신군주의 길을 걷던 1950년대 후반에 정치적 역동성을 분출했다. 쿠데타나 정변의 빈발이 그런 양상의 일환들이다.
미국이 한일수교 및 한미일동맹을 재촉하게 된 핵심 배경
'쿠데타의 시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 시기에는 군인들의 집권이 비일비재했다. 일례로, 1958년에는 수단·이라크·파키스탄·미얀마·태국에서 군인들이 정권을 잡았다. 한국 4월혁명이 있었던 1960년에는 콩고·에티오피아·튀르키예(터키)·라오스·엘살바도르의 군인들이 정부를 장악했다.
꼭 쿠데타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시기에는 세계 정세가 극히 불안정했다. 1959년 1월 17일 자 <경향신문> '59년의 세계 10대 문제 (3)'은 "작년 1년 중동의 움직임은 눈이 돌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이 기사는 "통일아랍공화국·아랍연방의 결성, 레바논 내분, 이락 혁명, 아랍연방 붕괴, 미·영 출병 등 여러 가지 세력이 헝클어져 중동의 세력분포는 서서히 바꾸어져가고 있다"고 평했다.
한편, 동남아와 관련해서는 "작년 10월 하순 타이와 버마에는 잇달아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독재제가 실시되었는데, 금년에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라고 한 뒤 "금년도 동남아에는 군부독재제 계속이 성공하느냐 혹은 정치가가 되돌아오느냐의 정국 변환이 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50년대 후반의 이 같은 역동성은 미국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도 즉각적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의 미국이 한일수교를 재촉하고 한미일 동맹을 촉구하고 미일동맹 업그레이드를 추진한 것은 유럽의 대미 자주성 강화와 함께 전개되는 제3세계의 역동성로부터 미국의 세계패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나토 및 한미일동맹을 기반으로 세계질서를 안정시키고자 했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에 일본 민중이 이른바 안보투쟁을 벌인 것은 그 같은 미국의 시도에 대한 거부였다. 미국의 요구에 휘말려 또다시 전란에 휩싸일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그해에 3·15부정선거가 반이승만 투쟁의 핵심 이슈가 되지 않았다면, 한국에서도 동일한 이슈를 놓고 민중 궐기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한국인들의 투쟁이 1964년과 1965년에 일어난 것은 미국이 요구하는 한일수교 및 한미일동맹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을 반영한다. 1960년경에 터졌을 이 거부감은 3·15부정선거와 5·16 쿠데타로 인해 몇 년 뒤에야 표출됐다.
미국이 한일 양국에 그런 요구를 한 이유 중 하나는 제3세계 정세와 이로 인한 미국 영향력 약화에 있었다. 1950년대 후반의 제3세계 현상이 한국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미국이 한일수교 및 한미일동맹을 재촉하게 된 핵심 배경이라는 점에서 1950년대 후반의 세계 정세는 이승만 정권과도 긴밀한 관련을 가졌다.
그런데 그런 세계정세를 호기심 있게 관찰하는 야심가의 방문을 받고 가슴이 덜컥했던 군인이 있다. 1957년 7월부터 1960년 10월까지 육사 교장을 지낸 이한림이다.
회고록 <세기의 격랑>에 따르면, 이한림은 육사 행정부장 때인 1946년 하반기에 친구 박정희에게 이끌려 서울 남산을 올랐다가 화들짝 놀랐다. 얼마 전에는 남로당원 가입을 권유해 자신을 당황케 만든 박정희가 그날은 남산에서 중앙청 쪽을 가리키며 미군정을 향한 군사 쿠데타를 제의했다.
그랬던 박정희가 세월이 흘러 육사 교장이 된 이한림을 방문해 '남산에 잘 아는 술집이 있다'며 그리로 가자고 제안했다. 1차 술자리가 파한 뒤의 상황이었다. '남산' 가자는 그 말에 이한림은 2차 제의를 뿌리쳤다. 쿠데타 제의를 할 것이라고 직감했던 것이다. 그 뒤로도 박정희는 집요하게 접근했지만, 이한림은 매번 피했다.
제1공화국 후반부 대외환경을 열심히 분석한 박정희
1950년대 후반에 박정희가 쿠데타 야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위와 같은 일화뿐 아니라 1963년에 발행된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도 감지된다. 쿠데타 2년 뒤에 대통령권한대행을 할 때 발행된 이 책은 그가 1950년대 후반의 세계정세를 얼마나 세밀히 관찰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 제4장의 소제목은 '세계사에 부각된 혁명의 각 태상(態像)'이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쑨원(손문)의 중국혁명, 케말 파샤의 튀르키예혁명을 비롯한 근현대 혁명들의 형태와 양상을 정리하는 부분이다.
이 소제목하에서 박정희는 1950년대에 정변이나 혼란이 심했던 콩고·이집트·수단·에티오피아·튀르키예·시리아·예멘·이라크·이란·파키스탄·인도·실론(스리랑카)·미얀마·태국·인도네시아·과테말라·온두라스·니카라과·파나마·쿠바·도미니카·에콰도르·콜롬비아·볼리비아·아르헨티나·파라과이·베네수엘라 등을 거론하면서 짤막한 설명들을 제공했다.
그는 북아프리카 및 중동 상황과 관련해서는 "동서 양 진영에 대한 또 하나의 세계권을 형성하려는 것"이라며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제3세계의 혁명과 쿠데타를 낮춰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 지역의 쿠데타를 '후진국 쿠데타'로 부르기도 하고, 복놀이나 불장난으로 부르기도 했다. 복날에 고기굿 끓여먹듯이 혁명을 복놀이 삼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평가절하했던 것이다.
1950년대 후반의 쿠데타 현상에 대한 자유롭고 개성적인 분석이 기술된 것은 이 책이 누군가의 대필이 아닌 그 자신의 저작임을 보여준다. 쿠데타로 인한 혼란이 정리되지 않은 시기에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그가 그 이전에 세계 정세를 세밀히 관찰했다는 판단을 갖게 만든다.
1950년대 후반을 풍미한 세계적 쿠데타 현상은 일차적으로 이승만 정권의 대외환경에 영향을 줬다. 그런 현상을 외교관이나 정치학자가 아닌 군인 박정희가 세밀히 관찰하면서 그것이 한국에 미칠 영향이나 시사점을 분석했다. 군인 박정희는 제1공화국 후반부의 대외환경을 누구보다 열심히 분석한 관찰자였다.
그런데 박정희는 자신이 관찰한 그 현상의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제3세계 현상의 결과로 발생한 미국의 한일수교 재촉은 1960년 4·19혁명의 의제가 되지 않고, 박정희 집권기인 1964년과 1965년의 핵심 이슈가 됐다. 이로 인한 거국적 항쟁에 맞닥트린 것은 그다. 이승만 정권 당시의 한국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하며 연구했던 제3세계 쿠데타의 후폭풍이 그를 강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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