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전씨 경은파의 일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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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음파의 파시조
하음군 전균(전윤)은 내시이긴 하지만 조선조 담양전씨에서 유일무이한 5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최고 품계 - 정1품 숭록대부 (삼정승과 같은 품계)
최고 관직 - 판내시부사 정2 품
최고 녹훈 - 좌익, 정난 공신이라는 최상급의 공신록에 이름 올림
시호 - 특별한 공이 있는 신하가 죽으면 왕이 내리는 시호도 받음 (비록 사헌부의 반대로 무산)
종묘배양 - 왕이 가장 아끼는 신하의 위패를 왕과 함꼐 종묘에 배양하는데 세조는 원했으나 무산
조선조에 비슷한 급의 벼슬을 한분이 조선초 장원급제까지 한 연안군 전가식이란 분이 예조판서를
지내고 세종에 의해 영의정에 추증되었다고 하나 조선왕조 실록에는 그런 기록이 전무하므로
사실이 아님 고로 판내시부사 전균이 담양전씨가 조선조에 배출한 가장 높은 고위직 관리였다 하겠습니다.
전가식은 정종-> 태종-> 세종편에 총 18번 언급되고
세종 16권 4년 4월 16일 (임인) 3번째기사 / 사헌부에서 역적과 불충 죄인을 처벌할 것을 상소하다
에 사헌부에서 전가식을 벌하라는 내용에 마지막으로 등장하고 실록에서 사라짐
이에 반에
전균은 조선왕조실록에서 109번 이름이 등장하고 세조조에는 52번이나 언급되며 세조는
항상 그를 비호하며 아꼈습니다.
다음은 백과사전의 내용입니다.
어릴 때 내시부(內侍府) 소속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동첨내시부사(同僉內侍府事)가 되고, 1447년(세종 29) 동판내시부사(同判內侍府事)를 거쳐 1452년(문종 2) 동지내시부사(同知內侍府事)가 되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세력인 황보 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원로대신을 제거한 계유정난 당시에 수양대군을 적극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이 되고 강천군(江川君)에 봉하여졌으며, 1455년(세조 1)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58년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에 승진되고, 1466년 하음군(河陰君)으로 개봉(改封)되고, 1468년 품계가 숭록대부에 이르렀다. 환관으로 공신이 되고 품계가 1품에 이른 것은 전윤이 처음이다.
죽은 뒤에 봉상시에서 양경(襄敬)이라는 시호를 의정(議定 : 논의하여 정함.)하였으나, 사헌부의 반대로 내려지지 않았다.
드라마이긴 하지만 sbs '왕과 나'의 가상인물 조치겸과 정치적 행보가 흡사한 인물이라고도 합니다.
하음군 전균(전윤)은 내시이긴 하지만 조선조 담양전씨에서 유일무이한 5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최고 품계 - 정1품 숭록대부 (삼정승과 같은 품계)
최고 관직 - 판내시부사 정2 품
최고 녹훈 - 좌익, 정난 공신이라는 최상급의 공신록에 이름 올림
시호 - 특별한 공이 있는 신하가 죽으면 왕이 내리는 시호도 받음 (비록 사헌부의 반대로 무산)
종묘배양 - 왕이 가장 아끼는 신하의 위패를 왕과 함꼐 종묘에 배양하는데 세조는 원했으나 무산
조선조에 비슷한 급의 벼슬을 한분이 조선초 장원급제까지 한 연안군 전가식이란 분이 예조판서를
지내고 세종에 의해 영의정에 추증되었다고 하나 조선왕조 실록에는 그런 기록이 전무하므로
사실이 아님 고로 판내시부사 전균이 담양전씨가 조선조에 배출한 가장 높은 고위직 관리였다 하겠습니다.
전가식은 정종-> 태종-> 세종편에 총 18번 언급되고
세종 16권 4년 4월 16일 (임인) 3번째기사 / 사헌부에서 역적과 불충 죄인을 처벌할 것을 상소하다
에 사헌부에서 전가식을 벌하라는 내용에 마지막으로 등장하고 실록에서 사라짐
이에 반에
전균은 조선왕조실록에서 109번 이름이 등장하고 세조조에는 52번이나 언급되며 세조는
항상 그를 비호하며 아꼈습니다.
다음은 백과사전의 내용입니다.
어릴 때 내시부(內侍府) 소속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동첨내시부사(同僉內侍府事)가 되고, 1447년(세종 29) 동판내시부사(同判內侍府事)를 거쳐 1452년(문종 2) 동지내시부사(同知內侍府事)가 되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세력인 황보 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원로대신을 제거한 계유정난 당시에 수양대군을 적극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이 되고 강천군(江川君)에 봉하여졌으며, 1455년(세조 1)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58년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에 승진되고, 1466년 하음군(河陰君)으로 개봉(改封)되고, 1468년 품계가 숭록대부에 이르렀다. 환관으로 공신이 되고 품계가 1품에 이른 것은 전윤이 처음이다.
죽은 뒤에 봉상시에서 양경(襄敬)이라는 시호를 의정(議定 : 논의하여 정함.)하였으나, 사헌부의 반대로 내려지지 않았다.
드라마이긴 하지만 sbs '왕과 나'의 가상인물 조치겸과 정치적 행보가 흡사한 인물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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