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공 세계도에 대한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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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지안
댓글 0건 조회 6,195회 작성일 12-08-29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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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공 조생 -> 과천군 순 -> 회정공 자수 이렇게 세분이 삼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째)

자랑스런선조란에서
문원공께서  (1318년 생 ~ 1355년 졸)로 쓰고 있습니다.
회정공편에서는 회정공이 공민왕조에 문과에 합격하신걸로 적고 있습니다.
고려방목에  실제로 담양전씨로서는 전녹생, 전자수 두분의 이름 현존하는데

田子壽
[고려문과] 공민왕(恭愍王) 2년(1353) 계사(癸巳) 공민왕 2년 계사방(癸巳榜) 동진사(同進士) 13위(23/35)
 
곧 문원공이 35세에 손자가 과거에 합격한게 되죠.
여기서 조손관계의 의문이 생기고


둘째)

문원공의 생몰년에 대\해서

담양전씨 중 고려조에 가장 많은 사료가 존재하는 야은공 녹생의 생년을 대부분의 자료에서
1318년 생으로 적고 있으면 졸은 1375년(고려사의 기술)이라 함
예전 개편전 홈페이지에서 이부분을 지적했고 문원공의 생졸년을 미상으로 처리했던 기억이
있는데 또 1318년이 되었네요.


또 선생이 교류했다는 당대의 목은, 도은

도은은 이숭인으로 (1349년 ~ 1392년)  목은 도은과 함께 시를 짖고 울었다면...
1355년 졸은  말이 안됨 낙향하는 지인을 배웅하는 자리에 1328년생의 목은 이색과는
몰라도 1355년 졸하신 연대에 7살 짜리 도은과 시를 짓고 울일은 없을 터... ...


공이 족보에서 손자라고 적고 있는 회정공과 함께
고려 충신들이 봉안된 북한 개성의 두문동 서원 정절실 정절반 20위중 한분으로 봉안되어
 계신데 공이 두문동 72현(72현 72인라는 말이지만 포괄적으로 따져 훨씬 많은 분들이 존재)
의 주도적 인물로 회자 되는 기록들 또한 공의 졸년이 1355년이 아님을 방증 ( 공이 두문동
에 계셨던 것은 아님)
 
*두문동 서원에는 고려충신의 위패 119위가 모셔져 있는데 담양전씨로서는 전귀생,전조생,전자수 세분이 모셔져 있음




확실한 자료가 있어서 세계도가 완성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네요.

몇몇 명문가를 제외한 성씨들이 1700년대 들어서야 족보를 만들어 내면서 몇백년전 조상들의
자리가 바뀌는 경우도 생기고 상고 할수 없는 대는 대부분 중국에서 왔다식의 사대주의로 시작되며 우리집이 큰집이다 싸움은 지금도 흔하다고 들었기에 드는 의문입니다. 조선조의 과거 전씨 과거 급제자들의 절반 가량이 기재한 본이 담양이 아닌 개성 과천등 각기 다 달랐던 점도 그렇구요.


600년전의 일들을 일천한 자료와 구술 전해진 것들을 옮기는 일이 쉽지는 않았겠으나 현재
정보화된 자료를 볼때 미심적인 부분들이 있어 이렇게 질문 드립니다.




참고로 충혜왕과의 인연과 일화를 자랑스럽게 연관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충혜왕은 고려 아니라 우리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운 폐륜아중의 폐륜아로 고려유학의
선구자중 한분으로 꼽히는 분과는 어울리는 대상이 아닙니다. 어디서 나온 일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충혜왕의 행적을 볼 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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