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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답변을 주신데 감사를 드리구요.
갑자기 준비가 없어 대충 답변을 드리고
다음에 자세한 내용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연안 전씨(延安田氏)
연안(延安)은 황해도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대 동음홀(冬音忽) 또는 고염성(敲鹽城)이라 부르다가 통일신라시대에 해고군(海皐郡), 고려에서는 염주(鹽州), 영응현(永應縣), 복주(復州), 석주(碩州), 온주(溫州) 등으로 고쳐 불렀고, 충선왕(忠宣王:제26대왕, 재위기간 1309∼1314) 때 연안부(延安府)로 고쳤다.
1895년 군이 되었으며, 1914년 백천군(白川郡)과 합하여 연백군(延白郡)이 되었다.
연안 전씨의 시조 전가식(田可植)은 담양군 전득시(田得時:담양전씨의 시조)의 10세손이며, 뇌은(牢隱) 전귀생(田貴生)의 증손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1339년(조선 정종 원년) 생원(生員)으로 문과에 장원하여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사간원(司諫院), 좌정언(左正言), 육조의 정랑(正郞) 등을 거쳐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고 만년에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담양 전씨에서 분적하여 가식(可植)을 시조로 하고 관향(貫鄕)을 연안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연안 전씨는 가식(可植)의 아들 6형제 대(代)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 가문이 크게 번창하였는데 양원(養元)이 사온서 직장(司 署直長)을 , 양건(養乾)이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역임했으며, 양민(養民)이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지냈다.
그외 인물로는 중추부사(中樞府使) 덕우(德雨)와 부호군(副護軍) 광업(光業)이 사복시정(司僕侍正)을 지낸 극의(克義), 부총관(副摠管)을 지낸 상휘(尙輝)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9년 己巳(기사) 8월에는 善山(선산)에서 黃海道(황해도) 延安(연안)으로 移居(이거)하여 돌아가신 延安君(연안군)을 追慕(추모)하고 遺德(유덕)을 기리기 위해 善山(선산) 尙州(상주) 金凌(금릉) 公州(공주) 서울 등지의 后孫(후손)들이 故地(고지)인 善山郡(선산군) 武乙面(무을면) 武夷洞(무이동)에 「贈領議政行 禮曺判書 대延安君 田公壇所」(증영의정행 예조판서 대연안군 전공단소)란 祭壇碑(제단비)와 招魂墓(초혼묘)와 追慕碑(추모비)를 세우고 매년 享祀(향사)를 지내고 있다.
碑文(비문)은 文學博士(문학박사) 靑松(청송) 沈載完(심재완)씨가 撰(찬)하고 仁同(인동) 張炳壎(장병훈)씨가 썼다.
서원 이름은 무동서원이구요.
3분이 모셔져 있는데 2분이 집안 할아버지구요 한 분이 덕수이씨라
고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준비가 없어 대충 답변을 드리고
다음에 자세한 내용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연안 전씨(延安田氏)
연안(延安)은 황해도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대 동음홀(冬音忽) 또는 고염성(敲鹽城)이라 부르다가 통일신라시대에 해고군(海皐郡), 고려에서는 염주(鹽州), 영응현(永應縣), 복주(復州), 석주(碩州), 온주(溫州) 등으로 고쳐 불렀고, 충선왕(忠宣王:제26대왕, 재위기간 1309∼1314) 때 연안부(延安府)로 고쳤다.
1895년 군이 되었으며, 1914년 백천군(白川郡)과 합하여 연백군(延白郡)이 되었다.
연안 전씨의 시조 전가식(田可植)은 담양군 전득시(田得時:담양전씨의 시조)의 10세손이며, 뇌은(牢隱) 전귀생(田貴生)의 증손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1339년(조선 정종 원년) 생원(生員)으로 문과에 장원하여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사간원(司諫院), 좌정언(左正言), 육조의 정랑(正郞) 등을 거쳐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고 만년에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담양 전씨에서 분적하여 가식(可植)을 시조로 하고 관향(貫鄕)을 연안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연안 전씨는 가식(可植)의 아들 6형제 대(代)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 가문이 크게 번창하였는데 양원(養元)이 사온서 직장(司 署直長)을 , 양건(養乾)이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역임했으며, 양민(養民)이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지냈다.
그외 인물로는 중추부사(中樞府使) 덕우(德雨)와 부호군(副護軍) 광업(光業)이 사복시정(司僕侍正)을 지낸 극의(克義), 부총관(副摠管)을 지낸 상휘(尙輝)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9년 己巳(기사) 8월에는 善山(선산)에서 黃海道(황해도) 延安(연안)으로 移居(이거)하여 돌아가신 延安君(연안군)을 追慕(추모)하고 遺德(유덕)을 기리기 위해 善山(선산) 尙州(상주) 金凌(금릉) 公州(공주) 서울 등지의 后孫(후손)들이 故地(고지)인 善山郡(선산군) 武乙面(무을면) 武夷洞(무이동)에 「贈領議政行 禮曺判書 대延安君 田公壇所」(증영의정행 예조판서 대연안군 전공단소)란 祭壇碑(제단비)와 招魂墓(초혼묘)와 追慕碑(추모비)를 세우고 매년 享祀(향사)를 지내고 있다.
碑文(비문)은 文學博士(문학박사) 靑松(청송) 沈載完(심재완)씨가 撰(찬)하고 仁同(인동) 張炳壎(장병훈)씨가 썼다.
서원 이름은 무동서원이구요.
3분이 모셔져 있는데 2분이 집안 할아버지구요 한 분이 덕수이씨라
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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