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忠義列傳 - 뇌은 전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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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전씨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학교 도서관을 뒤져서 어렵게 찾은 자료 중 일부인데 부족하지만 참고 해주세용...
뇌은 田貴生 (? - 1417)
자는 중경(仲耕)이요 호는 뇌은이요
담양인(潭陽人)으로 사인 희경(舍人 希慶)의 아들이요.
담양군 득시 ((潭陽君 得時)의 후손이다.
벼슬이 삼사좌운(三司佐尹 : 正3品) 에 이르렀다. <<成人錄>>
여말에 국사가 날로 그릇됨을 보고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고려가 망함에 동지들도 더불어 부조현(不朝峴)에 올라가 각기 망복(罔僕)의 뜻을 말하고 관대를 풀어 걸고 패링이를
쓰고 망국지신(亡國之臣)을 자처하였다.
이 태조가 좌상(左相)과 우상(右相)으로 후하게 대접하여 불러도 받지 않고 가족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달아나 선산 가정산 아래에서 숨어 살았다. 이태조는 조영무(趙英茂)에게 명하여 가서 달래게 하였으나 나오지 않으니 또 예조판서 김약수(金若水)에게 명하여 와서 돈독히 깨어치며 이르기를 "만일 오지 않으면 집안이 멸문할것이라"고 하거늘 부득이 농민의 옷차림으로 들어가 왕을 뵈니 왕이 손목을 잡고 이르기를 "나의 벗아 이제 왔는가 본지 오래구려 그대의 머리는 희지 않았네. 나와 함께 과방(科榜)에 올라 같이 조정에 출입하였으니 그 정이 형제와 같으며, 적장 아지발도 (阿只拔都)를 정벌할 때 한몸이 되어 공을 이루었으니 어찌
그 인연을 돌아 보지 않으리오" 하니 선생이 대답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지아비를 고치지 않는법, 왕도 비록 남을 배반하지 않거늘 내가 마땅히 남을 속이겠습니까?" 하니, 좌우의 신하들이 선생을 죽이고자 하거늘 왕이 제지하며 이르기를, "옛날 주(周) 무왕(武王)은 이재(夷齋)를 죽이지 않았고,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엄자능(嚴子陵)을 벗으로 대우하였기에 후세에 어진 임금이라 하였다. 지금 어찌 충현의 선비를 해하겠는가"하며 공전(公田) 9백결(結)을 하사하였지만 받지 않았다.
<<成人錄>>
선생은 여말여초에 동지들과 운곡의 집으로 모여 조선조에 불복하고 오직 고려만을 사묘하며 그 강개한 충성으로 고려의 종사(宗社)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자 치악산(雉嶽山) 정상에다
단(檀)을 만들어 단군,기자,고려태조 등 열성(列聖)과 공민왕,여흥왕,윤왕,간성왕 등 변혁(變革)을 당한 왕들을 비롯하여 고려조에 충성하다가 살신성인한 충신들을 매년 춘추로 제사를 드렸다. 이 단사를 변혁사(變革祀)라고 하였다.
때에 사람들은 이에 종참한 제현들을 칭송하여 "무너진 천지에 강상(綱常)을 수립한 일월같이 밝은 충절의 절의"라고 하였다.
<<話東人物記 - 華海師全>>
별세하니 태종(太宗)이 듣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치제하니 그 치제문(致祭文)에 이르기를...
[학문과 도덕은 정이천(程伊川)과 같고,
절의와 충정은 엄자능(嚴子陵)과 같다]라고 하였다.
<<杜門洞書院誌>>
세보(世譜)에는 절해(絶海)로 들어가 그 마친바를 모른다고 하였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며, 홍성 구산사, 울진 반정사 옥구 삼양사에서 제향하며 두문동서원과 경현사에 배향되었다.
아들은 한(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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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담으로 뇌은공의 증손 연안군 가식(可植)이 정종원년 생원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할때 앞에서 언급된바있는 조영무의 아들이 2등을 했더군요...
정종이 태조 사후에 뇌은공의 자손을 불러 이태조가 뇌은공을 생각하며 그린 화첩을 뇌은공의 것이라 하여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올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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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름대로 찾는다고 여러 자료도 뒤져 보고 여러 도서관도 찾아 다녀 보았으나 자료를 구하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세보나 문중 어르신들 이야기를 어릴적 부터 듣고 자랄 기회가 없었기에 이 사이트가 더욱더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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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분들의 항렬을 보니 대부분 경은공파 시더군요 저는 경은공파 (판추공파判樞公派) 29대손이고 24살 대학생입니다.
종친회에 가입도하고 종친회도 나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혼자 가기엔 아직 그러네요 (아버지는 별관심없으셔서...) 어린 저두 나가거나 가입할수 있나요?
할아버지대에는 의령에 사셨대요... 신반리에요...
할아버지께서 아버지(4대독자) 어릴적에 돌아가셔서 집안이야기를 거의 모르고 친척도 없어서 (혹 여기서 먼 친척이라두 만나는 일이 생길지...)
핏줄을 잃어 버린듯한 느낌을 많이 받은 까닭에 어릴적 부터 혼자 옥편 찾아가며 족보를 보고 외우고 했는데 이렇게 좋은 사이트가 생겨서 너무 좋고 또 다행스럽게 느껴지네요.
자료 많이 올려주시고 빨리 업데이트 시켜주세요~~~~~~!
특히 의령 입향조이신 훈(勳)할아버지에 대해서 빨리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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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세요~
뇌은 田貴生 (? - 1417)
자는 중경(仲耕)이요 호는 뇌은이요
담양인(潭陽人)으로 사인 희경(舍人 希慶)의 아들이요.
담양군 득시 ((潭陽君 得時)의 후손이다.
벼슬이 삼사좌운(三司佐尹 : 正3品) 에 이르렀다. <<成人錄>>
여말에 국사가 날로 그릇됨을 보고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고려가 망함에 동지들도 더불어 부조현(不朝峴)에 올라가 각기 망복(罔僕)의 뜻을 말하고 관대를 풀어 걸고 패링이를
쓰고 망국지신(亡國之臣)을 자처하였다.
이 태조가 좌상(左相)과 우상(右相)으로 후하게 대접하여 불러도 받지 않고 가족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달아나 선산 가정산 아래에서 숨어 살았다. 이태조는 조영무(趙英茂)에게 명하여 가서 달래게 하였으나 나오지 않으니 또 예조판서 김약수(金若水)에게 명하여 와서 돈독히 깨어치며 이르기를 "만일 오지 않으면 집안이 멸문할것이라"고 하거늘 부득이 농민의 옷차림으로 들어가 왕을 뵈니 왕이 손목을 잡고 이르기를 "나의 벗아 이제 왔는가 본지 오래구려 그대의 머리는 희지 않았네. 나와 함께 과방(科榜)에 올라 같이 조정에 출입하였으니 그 정이 형제와 같으며, 적장 아지발도 (阿只拔都)를 정벌할 때 한몸이 되어 공을 이루었으니 어찌
그 인연을 돌아 보지 않으리오" 하니 선생이 대답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지아비를 고치지 않는법, 왕도 비록 남을 배반하지 않거늘 내가 마땅히 남을 속이겠습니까?" 하니, 좌우의 신하들이 선생을 죽이고자 하거늘 왕이 제지하며 이르기를, "옛날 주(周) 무왕(武王)은 이재(夷齋)를 죽이지 않았고,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엄자능(嚴子陵)을 벗으로 대우하였기에 후세에 어진 임금이라 하였다. 지금 어찌 충현의 선비를 해하겠는가"하며 공전(公田) 9백결(結)을 하사하였지만 받지 않았다.
<<成人錄>>
선생은 여말여초에 동지들과 운곡의 집으로 모여 조선조에 불복하고 오직 고려만을 사묘하며 그 강개한 충성으로 고려의 종사(宗社)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자 치악산(雉嶽山) 정상에다
단(檀)을 만들어 단군,기자,고려태조 등 열성(列聖)과 공민왕,여흥왕,윤왕,간성왕 등 변혁(變革)을 당한 왕들을 비롯하여 고려조에 충성하다가 살신성인한 충신들을 매년 춘추로 제사를 드렸다. 이 단사를 변혁사(變革祀)라고 하였다.
때에 사람들은 이에 종참한 제현들을 칭송하여 "무너진 천지에 강상(綱常)을 수립한 일월같이 밝은 충절의 절의"라고 하였다.
<<話東人物記 - 華海師全>>
별세하니 태종(太宗)이 듣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치제하니 그 치제문(致祭文)에 이르기를...
[학문과 도덕은 정이천(程伊川)과 같고,
절의와 충정은 엄자능(嚴子陵)과 같다]라고 하였다.
<<杜門洞書院誌>>
세보(世譜)에는 절해(絶海)로 들어가 그 마친바를 모른다고 하였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며, 홍성 구산사, 울진 반정사 옥구 삼양사에서 제향하며 두문동서원과 경현사에 배향되었다.
아들은 한(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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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담으로 뇌은공의 증손 연안군 가식(可植)이 정종원년 생원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할때 앞에서 언급된바있는 조영무의 아들이 2등을 했더군요...
정종이 태조 사후에 뇌은공의 자손을 불러 이태조가 뇌은공을 생각하며 그린 화첩을 뇌은공의 것이라 하여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올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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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름대로 찾는다고 여러 자료도 뒤져 보고 여러 도서관도 찾아 다녀 보았으나 자료를 구하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세보나 문중 어르신들 이야기를 어릴적 부터 듣고 자랄 기회가 없었기에 이 사이트가 더욱더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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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분들의 항렬을 보니 대부분 경은공파 시더군요 저는 경은공파 (판추공파判樞公派) 29대손이고 24살 대학생입니다.
종친회에 가입도하고 종친회도 나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혼자 가기엔 아직 그러네요 (아버지는 별관심없으셔서...) 어린 저두 나가거나 가입할수 있나요?
할아버지대에는 의령에 사셨대요... 신반리에요...
할아버지께서 아버지(4대독자) 어릴적에 돌아가셔서 집안이야기를 거의 모르고 친척도 없어서 (혹 여기서 먼 친척이라두 만나는 일이 생길지...)
핏줄을 잃어 버린듯한 느낌을 많이 받은 까닭에 어릴적 부터 혼자 옥편 찾아가며 족보를 보고 외우고 했는데 이렇게 좋은 사이트가 생겨서 너무 좋고 또 다행스럽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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