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전씨 정말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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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晦亭 田子壽라는 선조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시조 전득시의 9세손이고 경은 조생 할아버지의 손자이며 과천군 순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두문동서원지와 경진보 경현사지에서는 지정선군사 유년(有年)의 아들이요 사헌규정 림(霖)의 손자이고 아들은 지삼가 군사 유(柔),진성현감 익(益) 흡곡현감 보(普)이다
라고나와있답니다.
그리고 고려충의열전에서 또한 여러 문헌을 고증한바 담양전씨세보가 틀린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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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족보 (담양전씨 판추공파보)
-------------------------------------------------------------
문원공 조생(7세)-->과천군 순(8세) -->회정 자수(9세)-->-
-> 현감 엄(8세)
-> 생원 회(8세)
-> 별좌 개(8세)
지삼가군사 유(10세)-->통례원 봉례 보원(11세) --->운암 훈(12세)
진성현감 익(10세)
흡곡현감 보(10세)
-------------------------------------------------------------
위자료에 근거한 계보 (전자수)
-------------------------------------------------------------
사헌규정 림(霖) --> 지정선군사 유년(有年)---> 회정 자수(子壽)
-->지삼가군사 유
진성현감 익
흡곡현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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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에 근거한 계보 (전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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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희경(6세) --> 녹생(7세)
귀생(7세)
조생(7세)->과천군 순(8세)
현감 엄(8세)
생원 회(8세)
별좌 개(8세)
-------------------------------------------------------------
자수 선조께서 말년에 강원도 안렴사로 나갔다가 그곳 풍경에 반해 양진재란 초가집을 짓고 눌러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울진에 담양전씨가 촌락을 이루고 산다고 들었는데 그곳의 입향조가 아닌가요?
뭐가 잘못 된거죠?
족보를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얽히기만 합니다.
둘째
전씨삼은이신 세형제 분의 연대에 관한 여러 의문 과거 급제 졸한년도 등등의 문제 또한 자꾸 헤갈립니다.
녹생(1318-1375) 충혜왕때 급제했다라고 되어 있는데 충혜왕은
(1330-1332),(1339-1344)동안 제위에 있었는데...
상식적으로 볼때 두번째 제위기간에 급제한것으로 여겨 집니
다.
귀생 (? - 1417)
조생(? - ?) 충숙왕5년 (1336년)에 급제 했다고 한다면
10대 초반에 급제 한것인데... ...
세분의 정확한 나이차를 알순 없을까요? 귀생의 졸년과 비교한다
면
정말 아구가 맞지 않지않나요?
셋째 - 제가 한자-한문을 잘몰라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
의령의 입향조이신 훈(勳) 선조께서는 과거에 급제하신일이
없습니다. (조선문과방목 확인)
족보엔 현감 벼슬을 하신걸로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유림의 천거로 현감벼슬 정도는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 실록에 이름이 한자도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贈 이조판서 겸 지경연사가 될수 있죠?
贈 숭록대부(정1품) 이조판서 겸 지경연사란 벼슬을 아무리
증이지만 아드님들께서 특별한 공신이나 벼슬도 하지
않으셨고 정1품이란 품계를 받는데 실록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믿기지가 않습니다.
제가 해석을 잘못한건가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넷째 - 경은 조생(문원공)에 대한 설명에서 충혜왕이 영화루에
공을 불러 한나라의 충신 곽강과 제갈량의 충의라 칭찬하고
왕자들을 부탁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충혜왕이 천륜을 저 버린 폐륜아이고
폭정을 일삼은 폭군인데 그런 임금에게 인정 받고 칭찬받은
일은
숨길일이지 결코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섯째 - 의령을 비롯한 전국각지의 담양전씨들이
조선시대때 양반이었습니까?
의령에서의 위치는 어떠했나요?
4대조 안에 벼슬을 못하면 향반으로 전락하고
그런 제지양반들은 대가 지날수록
가세가 기울고 양민화 되지 않았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특별한 공신이나 벼슬한 분이 없었던
의령의 전씨와 대부분 전씨는 양반,선비의 뼈대를 어떻게
지켰습니까?
정말 궁금합니다.
대부분 농민이었을꺼 같은데... ...
조선 10대 벌열 집안의 파종가가 외가인 저는
어릴적 담양전씨는 쌍놈이다란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쌍놈이 아니다란 확실한 근거를 보여주세요.
고려의 충신~ 하지만 500년이란 세월 동안
그 자존심으로 벼슬을 하지 않은건 아니었다고 봅니다.
두서도 없고 질문도 엉망이네요
하지만 제가 정말 궁금해했던 사실들 입니다.
晦亭 田子壽라는 선조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시조 전득시의 9세손이고 경은 조생 할아버지의 손자이며 과천군 순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두문동서원지와 경진보 경현사지에서는 지정선군사 유년(有年)의 아들이요 사헌규정 림(霖)의 손자이고 아들은 지삼가 군사 유(柔),진성현감 익(益) 흡곡현감 보(普)이다
라고나와있답니다.
그리고 고려충의열전에서 또한 여러 문헌을 고증한바 담양전씨세보가 틀린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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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족보 (담양전씨 판추공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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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공 조생(7세)-->과천군 순(8세) -->회정 자수(9세)-->-
-> 현감 엄(8세)
-> 생원 회(8세)
-> 별좌 개(8세)
지삼가군사 유(10세)-->통례원 봉례 보원(11세) --->운암 훈(12세)
진성현감 익(10세)
흡곡현감 보(1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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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에 근거한 계보 (전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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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규정 림(霖) --> 지정선군사 유년(有年)---> 회정 자수(子壽)
-->지삼가군사 유
진성현감 익
흡곡현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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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에 근거한 계보 (전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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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희경(6세) --> 녹생(7세)
귀생(7세)
조생(7세)->과천군 순(8세)
현감 엄(8세)
생원 회(8세)
별좌 개(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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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선조께서 말년에 강원도 안렴사로 나갔다가 그곳 풍경에 반해 양진재란 초가집을 짓고 눌러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울진에 담양전씨가 촌락을 이루고 산다고 들었는데 그곳의 입향조가 아닌가요?
뭐가 잘못 된거죠?
족보를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얽히기만 합니다.
둘째
전씨삼은이신 세형제 분의 연대에 관한 여러 의문 과거 급제 졸한년도 등등의 문제 또한 자꾸 헤갈립니다.
녹생(1318-1375) 충혜왕때 급제했다라고 되어 있는데 충혜왕은
(1330-1332),(1339-1344)동안 제위에 있었는데...
상식적으로 볼때 두번째 제위기간에 급제한것으로 여겨 집니
다.
귀생 (? - 1417)
조생(? - ?) 충숙왕5년 (1336년)에 급제 했다고 한다면
10대 초반에 급제 한것인데... ...
세분의 정확한 나이차를 알순 없을까요? 귀생의 졸년과 비교한다
면
정말 아구가 맞지 않지않나요?
셋째 - 제가 한자-한문을 잘몰라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
의령의 입향조이신 훈(勳) 선조께서는 과거에 급제하신일이
없습니다. (조선문과방목 확인)
족보엔 현감 벼슬을 하신걸로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유림의 천거로 현감벼슬 정도는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 실록에 이름이 한자도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贈 이조판서 겸 지경연사가 될수 있죠?
贈 숭록대부(정1품) 이조판서 겸 지경연사란 벼슬을 아무리
증이지만 아드님들께서 특별한 공신이나 벼슬도 하지
않으셨고 정1품이란 품계를 받는데 실록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믿기지가 않습니다.
제가 해석을 잘못한건가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넷째 - 경은 조생(문원공)에 대한 설명에서 충혜왕이 영화루에
공을 불러 한나라의 충신 곽강과 제갈량의 충의라 칭찬하고
왕자들을 부탁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충혜왕이 천륜을 저 버린 폐륜아이고
폭정을 일삼은 폭군인데 그런 임금에게 인정 받고 칭찬받은
일은
숨길일이지 결코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섯째 - 의령을 비롯한 전국각지의 담양전씨들이
조선시대때 양반이었습니까?
의령에서의 위치는 어떠했나요?
4대조 안에 벼슬을 못하면 향반으로 전락하고
그런 제지양반들은 대가 지날수록
가세가 기울고 양민화 되지 않았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특별한 공신이나 벼슬한 분이 없었던
의령의 전씨와 대부분 전씨는 양반,선비의 뼈대를 어떻게
지켰습니까?
정말 궁금합니다.
대부분 농민이었을꺼 같은데... ...
조선 10대 벌열 집안의 파종가가 외가인 저는
어릴적 담양전씨는 쌍놈이다란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쌍놈이 아니다란 확실한 근거를 보여주세요.
고려의 충신~ 하지만 500년이란 세월 동안
그 자존심으로 벼슬을 하지 않은건 아니었다고 봅니다.
두서도 없고 질문도 엉망이네요
하지만 제가 정말 궁금해했던 사실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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