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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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감사합니다.
저희 시조 선용신님의 배위는 담양전씨 입니다.
묘소는 전란으로 실묘하고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숭모제에 설단하였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보성선씨 시조 선용신(도촌파)님이 언급된 호구첩(호적등본)은 우리나라에서 이성게 호구첩 다음으로 오래된 공문서입니다.
1421년에 시조님의 증손이 재작성하여 공인을 받은것인데 거기에도 전씨 시조모님의 기록이 빠저있어요
시조님의 이름이 나타난 호구첩(참고)
1421년(세종3) 宣仲義 戶口帖
安承俊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
호구첩의 판독
원문(原文) * 부분은 훼손 부분
全羅道知寶城郡事爲戶口事 今七月二十五日本郡接通政大夫檢校戶曹參議 宣仲義所志內
전라도지보성군사위호구사 금칠월이십오일본군접통정대부검교호조참의 선중의소지내
持音戶口乙 倭亂서(잃을서 : pc내장안된글자: 門+ 西)失後 更良成置不得爲白有臥乎 節夫妻同籍子息等乙用良
지음호구을 왜란서실후 경양성치불득위백유와호 절부처동적자식등을용양
所志後錄爲白去乎 兩邊祖上作文相考陳省成給向事 所志是去有良이
(pc내장 없음_그렇다할 이 :人+小)
소지후록위백거호 양변조상작문상고진소성급향사 소지시거유양이
本戶口進來相考爲白乎矣 加減無白置有良이 合行具呈 伏乞 照驗施行 須至呈者
본호구진래상고위백호의 가감무백치유양이 합행구정 복걸 조험시행 수지정자
右呈
우정
戶曹
호조
永樂十九年 七月二十五日 知郡事金 00
영락십구년 칠월이십오일 지군사 김00
판독(判讀)
전라도 보성군사가 호구를 시행하는 일이다. 금년 7월 25일 본 군에 거주하는 통정대부 검교 호조참의 선중의가 올린 소지 내에, “가지고 있던 戶口(호적)을 왜란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뒤에 다시 만들어두지 못하였으므로, 지금 夫妻가 함께 기록한 호적과 자식들을 가지고 소지 뒤에 기록하오니, 부처 양변의 조상의 문서(作文)를 성고하셔서 陳省을 만들어 주실일” 이라는 소지입니다. 본 호구를 보성군에 제출하게 하여 상고해보니, 加減이 없습니다. 마땅히 시행하도록 갖추어 올립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잘 살피셔서 시행하십시오.
右呈
...............
호조
세종19년(1421년) 7월 25일. 지군사 김00
..............................................................
..................................................
戶口
호구
呈後
정후
戶 通政大夫 檢校戶曹參議 宣仲義 年六十四 本 寶城郡
호: 통정대부, 검교호조참의,선중의, 년(나이)육십사(세), 본 보성군
父 左右衛保勝郞將 元祉 故
부: 좌우위보승랑장, 원지, 고
祖 承奉郞監察糾正 宣儒
조: 승봉랑감찰규정, 선유
曾祖 進士 用臣 이부분이 시조님 해당난
증조: 진사, 용신
外祖及第神虎衛保勝別將朴 逸本寶城
외조:급제(급제하여)신호위보승별장(을 지낸) 박일 본 보성
戶 祖妻矣父 從仕郞司設署丞 朴益莊 本 寧海府 *莊자로보임
호: 조처의부, 종사랑사설서승, 박익장, 본, 영해부
祖 及第 引成
조: 급제, 인성
曾祖 郞將同正 林茂
증조: 랑장동정, 임무
外祖 檢校軍器監 宋安 本 玉果
외조: 검교군기감, 송안 본, 옥과
戶 外祖妻矣父 監門衛郞將 李碩 本 00
호: 외조처의부, 감문위랑장, 이석 , 본, 00
祖 中顯大夫監門衛大護軍 李公
조:중현대부감문위대호군,이공
曾祖 追封正順大夫鷹楊軍上護軍 李仁
증조:추봉정순대부응양군상호군,이인
外祖 通禮門祗後 崔經, 本 溟洲
외조:통례문지후,최경, 본 명주
戶 妻全氏故本中牟縣
호 처전씨고본중모현
父 興威衛保勝別將 龍守
부:흥위위보승별장,용수
祖 承奉郞通禮門祗侯 解官 全 00
조: 승봉랑통례문지후 해관, 전00
曾祖 中顯大夫檢校大護軍 良節
증:조중현대부검교대호군,양절
外祖 令同正 金良 本泗州
외조: 영동정 ,김양, 본 사주(사천)
戶 祖妻父 禮賓丞同正 全挺 本 中牟
호: 조처(의)부,예빈승동정,전정, 본 중모(모현)
祖 注簿同正 全義
조: 주부동정,전의
曾祖 令同正 孝順
증조: 영동정,효순
外祖 令同正 姜公載 本 同村(材 ?)
외조: 영동정, 강공재, 본 동촌
戶 外祖妻父 令同正 李之桂 本晋州
호:외조처부,령동정,이지계, 본 진주
祖 中軍錄事神虎衛保勝中郞將 李 00
조: 중군록사신호위보승중랑장, 이00
曾祖 閣門通事舍人 李文
증조: 각문통사사인,이문
外祖 興威衛精勇攝中郞將 高應海 本開城府
외조: 흥위위정용섭중랑장, 고(응해), 본개성부
幷産 一男 同미 年三十六 二男 興道年二十九 三男 宗道 年二十
七 四男 弘道 年二十四 五男 庸道 年二十一 一女子 年十
병산(자녀합해서),일남 동수 년(나이) 삼십육,이남 흥도 (년이십)
구,삼남 종도 년 이십칠, 사남 홍도 년이십사, 오남 용도 년이십일, 일녀자 년십
節付 印
原
원(끝)
官印 6處 : 호구첩 여섯부위에 낙관이 있음
印文 : 전라도도관찰출척사(全羅道都觀察黜陟使)
---------------------------------------------
*호구첩 세미나
일자: 2007년05월12일
장소: 한국학 중앙연구원
강사: 문학박사 안승준
○ 戶曹參議 宣仲義
1358년 고려 공민왕 7년 출생,
1392년 조선조 개창과 더불어 관직에 나가 통정대부 검교호조참의를 지냄.
1421년(세종 3년) 山陽(보성)으로 낙향.
1. 현재까지 발굴된 호적(호구) 가운데 국보 131호 1392년 이성계 호적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원본 호적. 작성 시기. 사료적 가치 등의
측면에서 볼 때 국가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됨.
2. 호적에서 최소한의 세계를 밝히는 것은 신분제도의 성립과 함께 입적한
자의 국가에 대한 의무와 관련하여 그 사회적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서
발전되었다. 그러나 고려호적이 그에 그치지 않고 광범위하게 그 세계를
밝히고 있는 것은 호적이 단순히 국가에 대한 의무와 관련하여 호와 구를
파악한다는 기능외에 고려에서의 신분제도 및 친족제도의 발전과 관련
하여 봉건적인 신분과 친족관계를 그 자체로 확인하기 위한 기능을 따로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3. 고려(高麗)의 호적 제도는 팔조 호구에서 그 모계(母系) 및 처계(妻系)의
세계를 부계(父系)의 그것과 같이 광범하게 밝히는 제도와 함께 고려시대
의 여성 지위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시조 선용신님의 손녀가 1370년대쯤 함안조씨 조승숙께
시집갔는데 선씨의 족보 내용과 조씨가문의 족보 내요이 일치
여부를 확인하였는데 정교하게 일치하고 관리되고 있더군요
다음은 양집안 질의 응답 내용입니다
* 질의내용)
족보에 나오는 덕곡 조승숙 어른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그 덕곡선생과 동일인(同一人)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아마도 함안조씨 족보에서 덕곡선생의 배씨(配氏)께서 보성선씨라고 기록되어 있다면 동일인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 종인(從仁), 종의(從義), 종예(從禮)라고 적혀 있습니다.
* 답변)
먼저 저희 함안조씨(咸安 趙氏)문중의 덕곡선생 문경공 諱 승숙(承肅) 선조님과 보성 선씨(寶城宣氏)문중의 선대 할머님과의 소중한 혈연의 인연이 맺어져 있음을 감사 드리며, 보성선씨 문중의 영원한 번창을 기원 드립니다. 또한 후손으로서의 선문규 사무관님의 보성선씨 문중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에 대하여 깊은 경의의 인사를 드리며, 저희 함안 조씨 문중 홈 페이지를 방문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 합니다.
-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러합니다.
족보에 나오는 함안 조씨 문중의 덕곡 조승숙 어른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덕곡 선생(字: 경부, 號: 덕곡, 시호: 문경)과 동일 인물입니다.
그리고 배위(부인)는 숙부인(淑夫人)보성 선씨(寶城 宣氏)이며, 덕곡선생및 숙부인 보성선씨의 묘소는 함양군 北白岩山 下 지곡면 新驛村 後 자(子)좌(坐) 합봉(合封)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덕곡선생 문경공 諱 승숙선조님과 配 숙부인 보성선씨 할머님슬하에 아드님 세분을 두셨는데. 장남은 종인(從仁), 차남은 종의(從義), 막내아드님은 종례(從禮)입니다.
드리고자하는 말씀은
이처럼 정교한 내용들이 700년을
이어오고 있는데 우리 시조모님의 기록이 선씨족보상
너무 빈약하여 귀문중에 질의하였읍니다
여하튼 우리 선씨 후손들은 담양전씨 들의 피를 받았기
자랑스럽습니다. 대종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선시 종친회 명의가 아닌
개인명의 였으니 이해하세요
저희 시조 선용신님의 배위는 담양전씨 입니다.
묘소는 전란으로 실묘하고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숭모제에 설단하였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보성선씨 시조 선용신(도촌파)님이 언급된 호구첩(호적등본)은 우리나라에서 이성게 호구첩 다음으로 오래된 공문서입니다.
1421년에 시조님의 증손이 재작성하여 공인을 받은것인데 거기에도 전씨 시조모님의 기록이 빠저있어요
시조님의 이름이 나타난 호구첩(참고)
1421년(세종3) 宣仲義 戶口帖
安承俊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
호구첩의 판독
원문(原文) * 부분은 훼손 부분
全羅道知寶城郡事爲戶口事 今七月二十五日本郡接通政大夫檢校戶曹參議 宣仲義所志內
전라도지보성군사위호구사 금칠월이십오일본군접통정대부검교호조참의 선중의소지내
持音戶口乙 倭亂서(잃을서 : pc내장안된글자: 門+ 西)失後 更良成置不得爲白有臥乎 節夫妻同籍子息等乙用良
지음호구을 왜란서실후 경양성치불득위백유와호 절부처동적자식등을용양
所志後錄爲白去乎 兩邊祖上作文相考陳省成給向事 所志是去有良이
(pc내장 없음_그렇다할 이 :人+小)
소지후록위백거호 양변조상작문상고진소성급향사 소지시거유양이
本戶口進來相考爲白乎矣 加減無白置有良이 合行具呈 伏乞 照驗施行 須至呈者
본호구진래상고위백호의 가감무백치유양이 합행구정 복걸 조험시행 수지정자
右呈
우정
戶曹
호조
永樂十九年 七月二十五日 知郡事金 00
영락십구년 칠월이십오일 지군사 김00
판독(判讀)
전라도 보성군사가 호구를 시행하는 일이다. 금년 7월 25일 본 군에 거주하는 통정대부 검교 호조참의 선중의가 올린 소지 내에, “가지고 있던 戶口(호적)을 왜란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뒤에 다시 만들어두지 못하였으므로, 지금 夫妻가 함께 기록한 호적과 자식들을 가지고 소지 뒤에 기록하오니, 부처 양변의 조상의 문서(作文)를 성고하셔서 陳省을 만들어 주실일” 이라는 소지입니다. 본 호구를 보성군에 제출하게 하여 상고해보니, 加減이 없습니다. 마땅히 시행하도록 갖추어 올립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잘 살피셔서 시행하십시오.
右呈
...............
호조
세종19년(1421년) 7월 25일. 지군사 김00
..............................................................
..................................................
戶口
호구
呈後
정후
戶 通政大夫 檢校戶曹參議 宣仲義 年六十四 本 寶城郡
호: 통정대부, 검교호조참의,선중의, 년(나이)육십사(세), 본 보성군
父 左右衛保勝郞將 元祉 故
부: 좌우위보승랑장, 원지, 고
祖 承奉郞監察糾正 宣儒
조: 승봉랑감찰규정, 선유
曾祖 進士 用臣 이부분이 시조님 해당난
증조: 진사, 용신
外祖及第神虎衛保勝別將朴 逸本寶城
외조:급제(급제하여)신호위보승별장(을 지낸) 박일 본 보성
戶 祖妻矣父 從仕郞司設署丞 朴益莊 本 寧海府 *莊자로보임
호: 조처의부, 종사랑사설서승, 박익장, 본, 영해부
祖 及第 引成
조: 급제, 인성
曾祖 郞將同正 林茂
증조: 랑장동정, 임무
外祖 檢校軍器監 宋安 本 玉果
외조: 검교군기감, 송안 본, 옥과
戶 外祖妻矣父 監門衛郞將 李碩 本 00
호: 외조처의부, 감문위랑장, 이석 , 본, 00
祖 中顯大夫監門衛大護軍 李公
조:중현대부감문위대호군,이공
曾祖 追封正順大夫鷹楊軍上護軍 李仁
증조:추봉정순대부응양군상호군,이인
外祖 通禮門祗後 崔經, 本 溟洲
외조:통례문지후,최경, 본 명주
戶 妻全氏故本中牟縣
호 처전씨고본중모현
父 興威衛保勝別將 龍守
부:흥위위보승별장,용수
祖 承奉郞通禮門祗侯 解官 全 00
조: 승봉랑통례문지후 해관, 전00
曾祖 中顯大夫檢校大護軍 良節
증:조중현대부검교대호군,양절
外祖 令同正 金良 本泗州
외조: 영동정 ,김양, 본 사주(사천)
戶 祖妻父 禮賓丞同正 全挺 本 中牟
호: 조처(의)부,예빈승동정,전정, 본 중모(모현)
祖 注簿同正 全義
조: 주부동정,전의
曾祖 令同正 孝順
증조: 영동정,효순
外祖 令同正 姜公載 本 同村(材 ?)
외조: 영동정, 강공재, 본 동촌
戶 外祖妻父 令同正 李之桂 本晋州
호:외조처부,령동정,이지계, 본 진주
祖 中軍錄事神虎衛保勝中郞將 李 00
조: 중군록사신호위보승중랑장, 이00
曾祖 閣門通事舍人 李文
증조: 각문통사사인,이문
外祖 興威衛精勇攝中郞將 高應海 本開城府
외조: 흥위위정용섭중랑장, 고(응해), 본개성부
幷産 一男 同미 年三十六 二男 興道年二十九 三男 宗道 年二十
七 四男 弘道 年二十四 五男 庸道 年二十一 一女子 年十
병산(자녀합해서),일남 동수 년(나이) 삼십육,이남 흥도 (년이십)
구,삼남 종도 년 이십칠, 사남 홍도 년이십사, 오남 용도 년이십일, 일녀자 년십
節付 印
原
원(끝)
官印 6處 : 호구첩 여섯부위에 낙관이 있음
印文 : 전라도도관찰출척사(全羅道都觀察黜陟使)
---------------------------------------------
*호구첩 세미나
일자: 2007년05월12일
장소: 한국학 중앙연구원
강사: 문학박사 안승준
○ 戶曹參議 宣仲義
1358년 고려 공민왕 7년 출생,
1392년 조선조 개창과 더불어 관직에 나가 통정대부 검교호조참의를 지냄.
1421년(세종 3년) 山陽(보성)으로 낙향.
1. 현재까지 발굴된 호적(호구) 가운데 국보 131호 1392년 이성계 호적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원본 호적. 작성 시기. 사료적 가치 등의
측면에서 볼 때 국가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됨.
2. 호적에서 최소한의 세계를 밝히는 것은 신분제도의 성립과 함께 입적한
자의 국가에 대한 의무와 관련하여 그 사회적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서
발전되었다. 그러나 고려호적이 그에 그치지 않고 광범위하게 그 세계를
밝히고 있는 것은 호적이 단순히 국가에 대한 의무와 관련하여 호와 구를
파악한다는 기능외에 고려에서의 신분제도 및 친족제도의 발전과 관련
하여 봉건적인 신분과 친족관계를 그 자체로 확인하기 위한 기능을 따로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3. 고려(高麗)의 호적 제도는 팔조 호구에서 그 모계(母系) 및 처계(妻系)의
세계를 부계(父系)의 그것과 같이 광범하게 밝히는 제도와 함께 고려시대
의 여성 지위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시조 선용신님의 손녀가 1370년대쯤 함안조씨 조승숙께
시집갔는데 선씨의 족보 내용과 조씨가문의 족보 내요이 일치
여부를 확인하였는데 정교하게 일치하고 관리되고 있더군요
다음은 양집안 질의 응답 내용입니다
* 질의내용)
족보에 나오는 덕곡 조승숙 어른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그 덕곡선생과 동일인(同一人)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아마도 함안조씨 족보에서 덕곡선생의 배씨(配氏)께서 보성선씨라고 기록되어 있다면 동일인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 종인(從仁), 종의(從義), 종예(從禮)라고 적혀 있습니다.
* 답변)
먼저 저희 함안조씨(咸安 趙氏)문중의 덕곡선생 문경공 諱 승숙(承肅) 선조님과 보성 선씨(寶城宣氏)문중의 선대 할머님과의 소중한 혈연의 인연이 맺어져 있음을 감사 드리며, 보성선씨 문중의 영원한 번창을 기원 드립니다. 또한 후손으로서의 선문규 사무관님의 보성선씨 문중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에 대하여 깊은 경의의 인사를 드리며, 저희 함안 조씨 문중 홈 페이지를 방문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 합니다.
-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러합니다.
족보에 나오는 함안 조씨 문중의 덕곡 조승숙 어른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덕곡 선생(字: 경부, 號: 덕곡, 시호: 문경)과 동일 인물입니다.
그리고 배위(부인)는 숙부인(淑夫人)보성 선씨(寶城 宣氏)이며, 덕곡선생및 숙부인 보성선씨의 묘소는 함양군 北白岩山 下 지곡면 新驛村 後 자(子)좌(坐) 합봉(合封)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덕곡선생 문경공 諱 승숙선조님과 配 숙부인 보성선씨 할머님슬하에 아드님 세분을 두셨는데. 장남은 종인(從仁), 차남은 종의(從義), 막내아드님은 종례(從禮)입니다.
드리고자하는 말씀은
이처럼 정교한 내용들이 700년을
이어오고 있는데 우리 시조모님의 기록이 선씨족보상
너무 빈약하여 귀문중에 질의하였읍니다
여하튼 우리 선씨 후손들은 담양전씨 들의 피를 받았기
자랑스럽습니다. 대종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선시 종친회 명의가 아닌
개인명의 였으니 이해하세요
- 이전글종보를 받아 볼수 있는지요 07.10.23
- 다음글무과방목 0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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